고령화 시대에 다시 보는 유대인의 가정교육
요즘 매스컴에 버려진 노인, 소외된 노인에 관한 기사가 단골 소재가 된 지 오래다. 고령화는 마치 교육 문제처럼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과제이므로 드러내는 않지만, 전 국민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논의의 초점이 대부분 노후에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인 관점에만 치중하다 보니 삶의 질에 관한 논의는 사치스런 담론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생존의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먹고만 산다고 해서 노인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을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도래에 관한 예측은 이미 오래되어 새삼스러울 것이 없음에도 유달리 우리 사회를 긴장시키는 이유는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그 시대를 맞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족을 위해 모든 재물을 쏟아 붓다 보니 어느새 은퇴를 눈앞에 두었고, 자녀에게 의지하기에는 속절없이 시대가 변해버렸다. 이제 와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해 본들 대가족으로 돌아갈 리 없고 가족의 분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 해체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해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지금 은퇴 연령 세대는 대부분 부모님을 모시고 산 세대이다. 그러나 이미 자녀로부터 봉양받기는 포기한지 오래다. 또한, 전통적인 ‘효’의 가치를 인식하고 살아온 세대이지만, 자녀에게 ‘효도 받아야겠다!’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인 ‘낀’ 세대이다. 그래서 상실감도 비례해서 큰 것일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짊어진 짐이 유독 무거운 이유는 성장 일변도의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가족을 묶어주는 가치와 도덕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어쩌면 노후의 가난보다 무서운 ‘고독’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자녀에게서 서운한 느낌을 받았다면 어쩌면 그것은 가족 간의 문화와 유대 관계 형성을 소홀히 한 자신의 잘못일 수 있다. 늦었지만 유대인의 가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해받고 떠돌며 당한 모진 시련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디아스포라 이전부터 가정에서의 교육이 자녀 양육의 뿌리였다. ‘유대인 교육’ 하면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학교보다 가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다. 그만큼 가정에서 배우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유대인은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우고, 가정에서는 지혜를 배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학교나 사교육 기관에 맡겨버리지 않고 부모가 직접 나서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생각이나 가치관의 차이도 덜하다.
그들의 가정교육에서는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가정교사’다.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전통적 방식의 가정교육과 종교교육을 한다.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식탁예절, 전통행사 등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교육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한국인들이 사교육시장에서는 최고의 열성을 자랑하지만, 정작 부모들은 스스로 자녀를 교육하는데 시간도 없거니와 서툴다는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의 교육방식은 매우 엄격하며 고지식할 정도로 규칙적이고 종교적이다. 안식일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자녀교육에 모든 시간을 바친다. 하지만 “엄하게 키운 자식이 효도한다.”는 우리 속담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돈독하고 자기 몫을 충분히 하는 아이들로 키워낸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부모가 늙었다고 박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노후 대비도 잘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보호받는다는 안정된 느낌으로 살아간다.
21세기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로 ‘아버지 부재 사회(fatherless society)’라는 말이 있다. 어떤 보고서에 언급된 것으로 아버지가 없는 사회, 가장이 증발된 사회라는 말이다. 그로 인해 가정의 질서가 깨지고 사회의 무질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김장 담그는 법도 자세히 나와 있으니 부모와 대화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 세대가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생생한 경험과 세상을 사는 지혜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평등과 실용의 시대가 되다 보니 우리의 삶이 갈수록 횡적으로만 확장되는 느낌이다. 얄팍한 지식과 메마른 인간관계가 노후의 삶에는 독이다. 유대인을 통해 배우는 깊이 있는 삶의 지혜와 가족을 통해 이어져 가는 수직적 인간관계야말로 길고 외로운 고령화 시대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