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위기에서 종(種)의 위기로
시골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라고 하지만, 요즘은 대도시에서도 아이들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어린 시절에만 해도 무슨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아이들이 바글거리고 나가놀라는 어른들의 고함 소리가 익숙했다. 지금은 친척 혼사에 참여해도 늙수그레한 중, 노년들뿐 아이를 볼 수가 없어 적막하다. 점잖게 말해 ‘출산율의 저하’라고 하며 새삼스러울 것 없는 추세로 치부하지만, 이는 서서히 데워지는 가마솥 속의 개구리처럼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근본적인 미래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새 일본에 이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고령화되어 간다는 말은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출산율의 저하가 가져온 기형적인 인구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고령화가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하는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이다. 물론 고령화는 우리뿐 아니라 이민자들이 지속적으로 아이를 낳아주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도 벌써 고령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좋거나 나쁘거나 우리는 ‘빨리빨리’ 달려 나간다.
자연의 세계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들이 볼 때에는 인구감소가 자못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동물이 번식을 못해 안달인데 인간만이, 그것도 번식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 나아가 번식을 거부하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역주행을 마다않는다. 생물의 종에도 흥망성쇠의 주기가 있다면 어쩌면 인류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게 볼 때 인구감소는 국가적인 문제를 넘어서 종(種)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프랑크 쉬르마허의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를 보면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가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로 ‘가족의 붕괴’를 들고 있다. 요즘 어느 정도 ‘핵가족’에 익숙해지면서 친척들 간의 친밀도가 많이 약해졌지만, 사실 가족은 인류가 존재한 이후 내내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였다. 오늘날의 국가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족 중심의 ‘씨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20세기 산업화, 도시화라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어느 정도 경험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족의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아도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달려오고 최후까지 남아 돌보는 존재였다. 사회가 변하고 가족의 형태가 달라져도 가족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살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출산과 고령화가 이러한 흐름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것보다 외따로 떨어져 홀로 살 경우 수명이 더 짧다고 한다. 상식으로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는 것보다 홀로 여유 있게 살면 훨씬 안락하고 오래 살 것 같지만 그 반대이다. 또한, 가족 내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상식이다. 외부 환경 변화에 여자가 더 유연하게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잘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붕괴할 위험에 봉착했다는 진단이다. 20세기 도시화로 인한 단순한 물리적 해체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가족의 축소’인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 아이들은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없어질 것이란다. 불과 두 세대 내로 우리 아이들의 절반은 형제나 사촌이 없는 상태에서 자랄 것으로 예측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그런 기미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쉬르마허는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도 혈연관계가 아닌 공동체들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종교적인 의미의 공동체들이었다. 일본의 ‘세대가 공존하는 주택’처럼 앞으로는 계약 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에서도 공동의 선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더더욱 동맹자가 있어야 한다. 쉬르마허는 “신뢰, 무욕, 이타심, 단결심 같은 가치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닌, 심지어 돈과 대출로 환금화할 수 있는 가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가올 시련의 시대에 ‘가족’은 자산으로써의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