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혹시라도 북한의 개방에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개성공단을 북한이 폐쇄한지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무슨 속셈인지 북한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회담을 하자고 우리 측에 제안해 왔다. 그동안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왔던 공단 입주 업체들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접촉을 기대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의 기대대로 일이 풀려갈지는 알 수 없다. 정치와 군사밖에 없는 저들과 경제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볼 때마다 그들의 행태에 울화통이 터지고 어처구니가 없어 허탈감을 느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때론 그들을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본주의적 상식이 그들에게는 마치 외계인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개성공단이 오래 멈춰서면 거래선이 끊길 뿐 아니라 기업도 이미 다른 대안을 강구하여 다시 열려고 해도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정치’밖에 모르는 그들은 그런 ‘경제적 디테일’에는 무지해 아무 때나 수령의 명령이면 열 수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국가나 기업이나 디테일을 무시하면 반드시 망한다. 경제학의 상식 중 하나가 바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경구이다. 사상과 관념이 지배하는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은 어쩌면 디테일이라는 악마에게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는 북한에만 해당하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악마에게 잡아먹히며 내는 구슬픈 비명 소리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장면은 은퇴자들이 여유자금을 탁탁 털어 시작한 자영업이 3년 안에 70%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현실이다.
중국의 경영 컨설턴트 왕중추(汪中求)가 쓴 <디테일의 힘(Power of detail)>에 보면 그의 주장은 ‘100-1=0’이란 말로 요약된다. 백 가지를 다 잘했어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허사라는 것이다. 한 가지 사례를 옮겨보면, 중국 저장성에서 냉동새우를 판매하는 한 회사가 유럽의 수입업체로부터 이미 공급한 제품에 대한 수입을 거부당했다. 수입업체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이 회사가 수출한 1000t의 냉동새우 중 항생물질인 클로팜페니콜 0.2g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총 수출량의 50억 분의 1에 불과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일부 직원이 손에 습진이 생기자 클로팜페니콜이 함유된 소독약을 바르고 일을 하다가 새우에 그 성분이 묻게 된 것이다.
중국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민담 중에 ‘차부둬(差不多, 차이가 크지 않다는 뜻인데 흔히 대충 비슷하다는 의미로 쓰임) 선생’이라는 이가 있다. 차부둬 선생이 병이 나서 왕(汪) 씨 성을 가진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름이 비슷한 수의사 왕(王) 선생을 찾아갔다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었다는 우스갯소리다. 그는 죽으면서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지 않고 “대충 비슷하잖아(차부둬)”라고 우겼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의 기업인들은 ‘대장부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중국인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깨는데 노심초사하고 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국빈 만찬이 있을 때 자신은 먼저 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실제 연회에 나가서는 먹는 시늉만 하면서 손님이 식사를 잘 하는지 정성껏 챙기기 위해서였다. 왕중추는 이렇게 말한다.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디테일은 태도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구,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리 둑도 작은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집니다.”
모험을 하는 사람이 무모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모험가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세심하다.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모두 오른 산악인 엄홍길 씨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엄홍길의 휴먼 리더십>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평지에선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높은 곳에서는 팀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장비의 매듭 하나가 풀리는 작은 부주의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서울에서는 깜빡 잊고 못 챙긴 물건은 다시 사면 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그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