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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老少)가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

홍성표 2013. 4. 18. 15:18

 

 

평소에 TV 드라마는 거의 안 보지만 아내가 푹 빠져 몰두하는 작품이 나타나면 어쩔 수 없이 한두 번 어깨너머로 보게 된다. 최근에 그런 드라마가 나타났는데 바로 <무자식 상팔자>라는 작품이다. 과거에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속사포 대사와 현실의 정곡을 찌르는 비판의식으로 호감을 가지고 몇 번 시청했던 기억이 나서 결국에는 아내와 나란히 앉아 보는 처지가 되었다. 늘 김수현표 홈드라마의 공식을 따르므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매 번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솜씨는 여전해 어느새 다음 회를 기다리는 딱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드라마의 구도는 조부모와 증손녀까지 한 집에 살고, 형제는 가까운 거리에 모여 사는 전형적인 대가족 형태로 짜여졌다. 각 가정마다 문제를 안고 있고, 서로 간에는 갈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건강한 가족의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은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울고 웃으며 한참 드라마에 빠져 있다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니, 이러한 대가족 구도는 까마득하게 천연기념물로 멀어져간 유토피아가 아닌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유토피아의 세계.

 

사실 전에도 지적했듯이 대가족이야말로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해야 하는 노인 복지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이나 복지비가 생활비에 보태지고 자녀가 노인을 돌봄으로써 간병의 어려움도 해소된다. 또한, 가족들 간에도 서로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개인이 감당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노인들도 어느 정도 건강이 허락할 때 자녀의 자식들을 돌보아 줌으로써 육아라는 맞벌이 부부의 최대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 전문 용어로 ‘일타삼피’의 묘책이 아닌가?

 

그러나 이는 실현되기 어려울 만큼 시대의 강물에 휩쓸려 멀리 흘러간 느낌이다. 핵가족이라는 용어도 이미 구시대의 낡은 표현이 되고, 이제는 ‘나홀로 가정’이 대세로 자리 잡는 중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선망의 대상이던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원룸이니 일인 아파트니 하는 것이 각광을 받겠는가. 정부에서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개조하여 부분 임대를 할 수 있도록 법까지 바꿔준다니 대가족 제도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천연기념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 물 건너 이웃나라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일본에는 지금 ‘한지붕 다세대’ 공존형 주택이 유행이란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항상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서 경험하고 해법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이번에도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좋은 주거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젊은 세대와 노령 세대가 서로 교류하고 상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이를테면 ‘세대 공존형 주택’ 개념인 셈이다.

 

일본 나고야시에 있는 ‘느리게 사는 주택’에는 독신 노인 13명, 자녀를 둔 부부, 직장 여성 3명 등이 함께 살고 있다. 1층은 노인들이 함께 사는 공동 주거 공간이고, 가족과 직장 여성이 살고 있는 2층은 가구마다 독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주방, 화장실 등을 별도로 갖췄다. 젊은이들은 실버 세대와 어울리는 것을 조건으로 집세를 절반 정도 할인받는다. 운영 10년째를 맞고 있는 현재, 실버 세대와 젊은 층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이와 같은 주거 형태가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컬렉티브하우스 스가모’에는 임대료가 그리 싼 것도 아닌데도 대기자가 줄을 설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양로원과 유치원이 함께 있어 실버 세대가 유치원 보조 교사를 할 수도 있고, 각 가구는 독립적으로 살지만 식당과 세탁실 등은 공유하며 번갈아 공동으로 식사 준비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 간에 교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핵가족화와 고령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아닌가 한다. 노인 복지가 화두인 우리나라에서도 공적인 대응에만 몰두하지 말고 이런 방향으로 한 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