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때론 무모한 도전이 역사를 만든다

홍성표 2013. 7. 25. 10:12

 

 

역사를 읽다보면 수많은 ‘결정적 순간’들을 만난다. 당시엔 선악이 모호하지만, 그 후에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티핑 포인트’들이 역사가의 화려한 연구와 분석에 힘입어 ‘위대한 결단’으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무지와 오해가 빚어낸 해프닝이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인류사를 돌아보면 대제국을 일구거나 위대한 발견이 이런 우연 속에서 이루어져 우리를 즐겁게 한다. 알렉산더대왕이 유럽에서 인도까지 광활한 땅을 정복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남긴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그의 ‘무대뽀 정신’이 바탕을 이루기도 했지만, 한편 지리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된 업적이었다.

 

알렉산더대왕은 당시 세계가 우랄산맥과 인도 벵골지방 사이 어디쯤에서 끝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또한, 그는 인도까지의 정확한 거리 정보도 갖고 있지 못했다. 멀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며, 그저 몇 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병사들이 죽을 고생을 하고 본인도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오늘날 독일지방인 게르마니아의 크기를 실제 사이즈의 3분의 1 정도 되는 것으로 알았다 한다. 카이사르가 실제 게르마니아의 크기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라인강 쪽으로 진군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천년 후의 콜럼버스도 부정확한 지리적 정보로 인한 업적이라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폴레옹이 승승장구 한 것도 적중률이 형편없던 대포 덕분이라고 한다. 물론 그는 근대전쟁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꾼 인물이다. 그는 빼어난 대포 스페셜리스트로 유럽 역사를 뒤바꾼 수많은 전쟁에서 각종 포를 활용하여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런데 정작 상대가 공포에 떤 것은 나폴레옹의 대포알이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었다고 한다.

 

이런 장황한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역사적인 일들이 대부분 근거 없는 우연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변수를 다 재고도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무모해 보여도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시도가 비록 실패로 끝날지라도 역사는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갔다.

 

우리나라의 정주영은 도전하여 새 역사를 만든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머릿속의 계산이나 책상 위에서 하는 기획이 아닌,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직관과 배짱으로 난관을 헤쳐 나갔다. 그는 이 같은 단순함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선소부지 사진만 들고 유조선을 팔았고,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배 만들 자금을 구하는 신화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령화와 은퇴자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모아놓은 노후 자금도 변변치 못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별로 없어 앞으로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조그만 음식점을 내 보지만 자영업의 70%가 3년 안에 망한다는 통계가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청년의 마음으로 도전하는 무모함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눈앞에 있는 정보와 사례를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객관적인 환경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 정보나 분석이 없던 우리의 젊은 시절에도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최고의 번화가인 긴자에서 ‘나의 이탈리안’이라는 식당을 만든 사카모토 씨는 지금 69세이다. 그는 최고 수준의 맛을 제공하기 위해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의 요리사를 초빙했다. 그는 최고의 직원을 뽑아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믿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요리들이 고급 요리점의 3분의 1 가격이다. 대신 좁은 공간에서 서서 먹는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긴자인가? 그는 유니클로가 긴자에 점포를 내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객들이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컨셉은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사카모토 씨의 무모한 도전이 우리 실정에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2승 10패의 고난 속에서도 그 나이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정신이 놀라운 것이다. 다 알다시피 도전 없이는 성공도 있을 수 없다. 수많은 고민과 불안 때문에 도전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이 시대의 시니어들에게 도전이라는 이름의 ‘용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