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보자

홍성표 2013. 8. 3. 14:38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고집만 늘어난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자기 몸에 밴 생활 방식이 있으며, 자기만의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아집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거나 새로운 창업을 할 때 이런 고집은 하등의 도움이 못되며 오히려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자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집 속에 이미 위기를 불러온 요인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기업인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도 받았고, 주변의 많은 사람이 틀림없이 성공할 아이템이라고 칭찬해 마지않았었는데, 웬일인지 시장의 반응이 시원치 않고 운영자금도 모자라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충고를 들어보려 하니 말 좀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필자가 무슨 경영 컨설턴트도 아니고 남에게 충고해 줄 처지도 못되지만, 하도 부탁하기에 몇 가지 분석을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그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해 놓은 것을 비판하는데 대한 서운함이었던 듯했다. 나는 속으로 괜히 이야기를 꺼냈구나 하는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중국 고사에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이 있다. 나그네가 배를 얻어 타고 가다가 실수로 자신의 검을 강에 빠트렸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검을 떨어트린 뱃전에 표시를 하였다. 옆에서 보던 이가 왜 그곳에 표시를 하는가 하고 묻자 그는 이 자리에서 떨어트렸으니 이곳에서 물에 들어가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세상은 계속 바뀌어 가는데 영화로웠던 자신의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과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승산이 없는 시대이다. 남보다 한참을 앞서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다. 미래에 대한 꿈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 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턴필하모니의 지휘자였던 벤저민 젠더는 음악대학원의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모든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각자 자신이 A학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학기의 마지막 날짜로 된 편지에 적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A학점은 소수의 뛰어난 학생만이 받을 수 있는 점수인데 모든 학생에게 주겠다니 학생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저 A학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만 적당히 찾아서 써내면 될 줄로 알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수에게 자신을 증명해야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들은 평소처럼 B나 C학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애초에 A학점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사고방식과 결별했다. 어떻게 하면 A학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다. A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실제로 그 성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라는 시점에 갇혀 있으면 어렵고 힘든 과제는 피하게 된다. 그런데 어렵고 힘든 과제를 피하고 나면 예전의 방식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실패로 귀결된다. 1등이 되고 싶다면 이미 1등이 되었다고 생각하라. CEO가 되고 싶다면 이미 CEO가 되었다고 생각하라. ‘주인의식’이라는 말도 결국은 미래의 CEO가 현재에 투영된 것 아니겠는가?

 

카이사르도 원래 공화제에 반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갈리아를 정복하고 게르마니아에까지 진출하면서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일개 도시국가에나 적용될 법한 공화제는 이미 그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달았다. 광대한 로마제국을 경영하려면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였다. 그는 많은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국의 길을 닦았다. 그들에게 죽을 것을 미리 감지하고 탁월한 군주감인 옥타비아누스를 숨겨두었다. 그는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보았던 것이다.

 

은퇴자들이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번성했던 과거는 몽땅 잊을 일이다. 지금 나의 처지나 환경 따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것을 현재에 투영하는가이다.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 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어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무엇을 써넣을지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