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몸을 바꾼다
늘 가던 건강검진 병원에서 엊그제 또 전화가 왔다. 왜 빨리 와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느냐는 성화였다. 국가에서 무료로 검진을 해준다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며 가지 않고 있다. 사실 논란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제도이다. 국민 모두 적절한 비용에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매년 이렇게 건강진단까지 재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건강진단 받는데 게으른 것은 다소 의도적이다. 왜냐하면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몸만들기가 아직 덜 됐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대부분 건강진단 받기 며칠 전부터 술도 끊고 정상 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난센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건강진단을 마치 시험 성적표 받듯이 한다. 마치 거기에 표기된 숫자가 자신의 생명을 좌우하기라도 하는 듯이 두려움 속에.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믿음 속에 수없이 쏟아지는 갖가지 통계와 수치에 짓눌려 살고 있다. 그 수치가 어떻게 산출된 것이며 그것을 측정하는 기계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전문가가 설정해 놓은 가이드라인만 바라본다. 거기에 합격하면 안도하고 모자라면 불안해한다. 현대의 과학 발전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를 인정하지만, 이 정도면 새로운 ‘과학적 미신’이라 할 만하다.
인간의 몸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연속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수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분절적이다. 우리의 몸이 당뇨 수치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둘로 딱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자체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며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몸은 수만 년을 견디며 자연에 적응해 온 생명체이고, 과학은 백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그 뿌리가 깊다. 유심론과 유물론이 그럴 것이며,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과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그럴 것이며, 나아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그럴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만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현대인은 과학과 통계 수치 만능에 빠져 그것을 신봉하고 있다.
핀란드 의학자들이 심장병 위험이 있는 중년 남성들에게 일 년에 몇 차례씩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붉은 고기 대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드세요. 동물성 지방은 혈관을 막아버리거든요. 매일 규칙적으로 걸으세요. 걸을수록 지방을 태우고 혈관이 깨끗해지니까요. 그리고 담배를 끊으세요. 니코틴은 혈관을 딱딱하게 하니까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아보도록 하는 조언이었다.
또 다른 중년 남성들에겐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하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도 먹게 했다. 몇 년 후 두 그룹 간의 건강상태를 비교해보았다. 놀랍게도 엄격한 병원치료를 받았던 중년남성들보다 건강관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그룹이 사망률이 더 낮았다. 바로 심장병 예방연구 사례로 유명한 ‘헬싱키 연구’의 결과이다.
연구를 주도한 초프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관리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바라보면 몸도 변화한다.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는 것보다 머릿속에 얼마나 긍정적인 정보를 입력해 놓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는 젊음과 노화도 선택하는 것이며, 어느 쪽 정보가 많으냐에 따라 그의 현재가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가끔 모임에 가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고 이미 폭삭 늙어버린 사람도 있다. 젊어 보이는 사람은 생각도 젊다. 식물도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더 잘 자라고 싱싱한데 사람은 말해 무엇 하랴! 그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늘 세수하고 면도한 사람이 살아남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한다. 생각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