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단순한 삶의 미학(美學)
홍성표
2013. 10. 10. 19:34
일전에 순두부 맛이 괜찮아 가끔 들르는 음식점에 가 보니 메뉴판 위에 종이에다 쓴 신 메뉴 세 개가 더 붙어 있었다. 원래 순두부 전문집인데 새로운 메뉴는 순두부와 전혀 관계없는 냉면, 물만두 그리고 족발이었다.
주인에게 왜 새 메뉴를 추가 했느냐고 물으니 손님들이 찾으며 한마디씩 할 때마다 메뉴를 늘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대답이었다. 주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씩 늘릴 때마다 매상이 그에 비례해 오를 것으로 생각했을 테니 선택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겠지만, 식당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정체성이 불명확하면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정체성은 단순할수록 분명해진다. 그런데 질보다 양이 중시되던 20세기의 물량주의 시대를 살아오던 관성 때문인지 자꾸 여러 곳에 손을 뻗으며 복잡함을 다양함이라고 포장한다.
물론 재벌의 논리처럼 하나가 망해도 다른 것이 잘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보험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품이 일류가 못 되고 고만고만하다면 경쟁력 없이 메뉴만 많은 식당처럼 몸만 고되고 그 바닥에서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전제품도 과거에는 기능을 늘리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여 다기능 경쟁에 몰두했지만,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지자 요즘은 다시 기능을 단순화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디자인에서도 미니멀리즘이 21세기의 대세가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IT 업계의 우상인 스티브 잡스는 단순화의 경쟁력을 입증한 인물이다. 그에게 혁신이란 ‘단순화’라는 철학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제품이 계속 기능을 추가할 때 그는 과감하게 기능을 단순화한 MP3 플레이어를 세상에 내놓아 마니아들을 감동시켰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인생은 끊임없이 잡동사니가 늘어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늘어날 때는 눈치 채기 어렵지만, 이사라도 한 번 할 때면 수많은 물건에 질리기 일쑤다. 또한, 거의 태반이 지금은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에 어이없고 부끄럽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삶의 쓰레기가 가장 많은 시기는 은퇴 후 노년으로 접어드는 때일 것이다. 자녀들 분가하고 집을 줄여 갈 때가 되면 많은 짐에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남에게 주자니 낡았고 버리자니 쓸 만하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다시 쓸 날이 있겠지 생각하며 작은 집에 물건을 쑤셔 넣고 업보처럼 비좁게 살아간다.
일본의 어느 젊은 여성이 짐 정리의 달인이 되어 책까지 펴냈다는데 정리의 핵심은 버리는 것이란다. 인상 깊은 한 마디는 ‘버릴 것을 고르지 말고 남길 것을 고르라’는 말이다. 생텍쥐페리도 비슷한 말을 했지. “더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함이 완성된다.”고.
어디 이삿짐뿐이랴?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인간관계의 짐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회생활을 통해 맺어진 수많은 관계도 정리하지 않으면 피곤해진다. 처음 몇 번은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얼마 안 가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더구나 새로운 제 2의 삶을 시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에너지의 평형상태로 진행되며 그것은 곧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삶이 복잡해지는 것은 모든 것이 낡아가듯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이 힘이 드는 ‘생명현상’이다. 새로워지려면 단순화하라!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창조다.” 재즈 음악가인 찰스 밍거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