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바야흐로 문자(文字) 전성시대
홍성표
2013. 11. 25. 20:01
무슨 인문학(人文學)의 융성을 말하려는 것으로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전화 대신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세태가 흥미로워서 하는 말이다. 필자도 어느 사이엔가 전화를 걸기보다는 문자로 대화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주변을 보니 수다를 좋아하는 우리 나이의 여성들은 좀 덜하지만, 대부분이 문자를 애용하고 있었다.
지난 2월 국내 한 포털 사이트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만 보낸다’는 사람(4240명)이 ‘전화만 한다’는 사람(1028명)보다 4배 이상 많았고 응답자의 절반은 10~20대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젊은 층에서는 이미 문자 소통이 대세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과거 50여 년 전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던 백색전화 시대 이래로 전화는 말로 소통하는 도구로만 생각해 왔는데 이제 그 고정관념이 깨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생각하기에 따라 매우 놀라운 현상이고 학문적인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 이제 바야흐로 문자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60년대 전설적인 언론학자인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라는 말이다. 라디오의 시대가 저물고 TV의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충격을 경험한 시대에 그의 말은 정설로 굳어졌다.
그의 이론을 따른다면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문자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소리만 듣던 라디오에서 화면이 등장하는 TV에 매료되었듯이 선명한 액정화면에 흐르는 다양한 정보는 요즘 젊은이들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화면을 보던 습관은 문자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SNS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추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게다가 ‘카톡’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집단으로도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젊은 여성들은 이제 문자로 수다를 떠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강의실에서도 더 이상 떠들지 않게 되었고, 이성과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도 문자로 이야기한단다.
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부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은 이제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최근에는 ‘사귀자’ ‘헤어지자’ 같은 고백도 문자로 한다고 한다. 연애도 쿨 하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야 할지 인간성이 삭막해지는 세태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이렇게 ‘가상의 공간’에서 나누는 소통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히려 ‘현실의 소통’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 얼굴을 맞댄 대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한다. 휴대전화라고 하는 새로운 미디어가 가져다준 신종 ‘인간 소외’라고나 할까? IT 산업의 발전이 가져온 21세기의 '신(新)아노미 현상'이다.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말로써 빚어지는 불화가 얼마나 많은가. 직접 상대하여 대화하다가 때로는 본질과는 상관없는 말꼬리에 붙들려 곤욕을 치른 적이 부지기수이다. 감정에 치우쳐 좋은 관계를 망친 적은 또 몇 번인가.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데 문자는 매우 효율적이다.
로마 시대 플루타르코스는 ‘수다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확실한 것은, 말을 하지 않아 이득이 된 경우는 많아도, 말을 하여 이득이 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말할 수 있어도, 일단 말한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엎질러진 물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최소한 문자는 섣불리 말하지는 않는다.
문자로 대화하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쓸 수 있고, 생각을 정제하여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상대방의 상황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 회의 중이라도 방해하지 않고 끝난 후에 얼마든지 답장을 쓸 수 있다. 젊은이들의 인간관계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사실 문자로 하는 소통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나이 들어 보니 과거와 같은 다양한 사회생활이 줄어들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다. 연락이 뜸하다가 전화하기가 애매하면 문자로 하는 것이 서로 부담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수단이 된다. 사실 통화는 요금이 나가고 문자는 무료라는 것이 이런 사태의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