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홍성표
2013. 11. 29. 14:05
이미 유럽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염된 ‘고령화’ 문제는 마치 가을 산의 단풍이 남쪽으로 번지듯 가속도가 붙으며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속담이 진짜 맞는지(?) 제일 늦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음에도 진행 속도는 가장 빠르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도에 반해 고령화 사회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대비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문제다.
그간 고령화 사회를 전망하는 대부분의 보도가 사실 어두운 측면에 기울어 있었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오랜 기간 가족과 자식에게 헌신하다 보니 자신들의 노후에 대한 대비가 소홀하여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든가, 정책적으로도 복지나 건강보험 등에서 막대한 국가 부담을 걱정하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노인 자살이 늘어난다는 보도에 이르면 일부러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사회 문제는 없다. 식민지 시절도 겪어냈고, 전쟁도 이겨냈는데 도대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무엇이 있겠는가. 게다가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애들도 아니고 온갖 풍상을 이기고 산전수전 다 겪은 시니어들이 이 정도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자면 은퇴 세대야말로 이 나라를 지금의 모습으로 일으켜 세운 주역이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아도 과거보다 소비는 많이 줄었지만, 앞날에 대한 희망이나 기개는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은퇴자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은 고령화 사회가 도래한다는 흉흉한 풍문은 무성하지만, 숨죽이며 그와 맞서 싸우려는 민초들의 에너지도 그에 못지않게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로 응축되고 있는 형상이 아닌가 싶다. 결전의 그 날을 기다리는 전사들처럼.
최근 조선일보에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는 <6075신(新)중년>이라는 기사를 보며 어림짐작으로만 느끼던 그 에너지가 서서히 연기로 분출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오십이 넘어 창업하는 사람, 자원봉사하는 사람, 자신의 경험을 중소기업에 전수하는 사람, 눈높이를 낮춰 재취업하는 사람 등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동이 시작되고 있으며, 대부분 정부의 정책을 기다리지 않고 각개약진하고 있다.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는 유명한 ‘패러다임’ 이론이 등장한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의 틀로서의 패러다임은 그 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프레임이다. 그러나 그 틀에 맞지 않는 새로운 개별적인 사실들이 발견되고 쌓여 대다수가 변화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말하자면 패러다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도 시대적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그간의 ‘고령화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대책이 과거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어르신들을 모셔야 한다거나 돌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금 깨져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날의 ‘6075신(新)중년’은 유교식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난 세대이며, 자녀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비굴한 세대도 아니다. 비록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말끔히 청산하지는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근대화를 실현했으며 글로벌한 세계화에도 발 빠르게 앞장서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결코 젊은 세대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노년층을 무능하며, 사회적으로 돌보아야 하는 취약 계층으로 단정하고 제반 정책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심된다. 어쩌면 노년층 자신이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적 배려는 받으면서도 사회적인 지위는 누리려는 이중적 태도가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른 바 ‘낀 세대’론이 그러한 자학적 태도를 의심받는 대표적 주장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세상의 변화를 모르고 뭉개고 있는 사이에 민간에서는 이미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승부의 장(場)도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노인 문제도 점차 글로벌화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 문제에 관한 패러다임도 변할 때가 되었다. 요즘 인생의 후반전을 해외에서 도전하고 승부를 보려는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런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시니어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상 이렇게 길게 산 한국인은 없었어요. 장수에 대한 개념이나 이론이 전혀 없습니다. 또 노인을 과잉보호하는 연공서열적 인식이 아직도 굉장히 과해요. 이게 6075세대를 신중년이 아닌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인식이죠.”
노인을 노인으로 만드는 패러다임은 간단하다. 노인에게 가지가지 수당을 주고, 나이만 되면 지하철 무료승차권을 주고, 쓸데없이 나대지 말고 집안에 꼼짝 말고 틀어박혀 있으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6075세대가 은퇴했다며 후반전을 안 뛰면 자신도 국가도 망할 수밖에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