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은퇴 후 농촌에 내려가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은퇴 후 할 일도 마땅치 않고 재취업을 하려 해도 과거에 비해 형편없는 보수에다 하는 일도 단순한 일들이 많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게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물론 농사일도 쉬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았다는 추억만 믿고 덤비지만, 이미 실패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딱 알맞다.
그런데 사단은 농사일 이전에 집안에서 먼저 터진다. 늘그막에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아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농사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주변에 쌓아놓은 감성 네트워크를 해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를테면, 손주 재롱 보는 재미, 틈틈이 쇼핑하는 재미,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앉아 수다 떠는 재미 등 여러 가지다. 그래서 ‘늘그막에 영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서 3, 40대 부부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편과 아내가 꿈꾸는 노후 생활의 모습이 너무 달랐다. 남편의 75%는 은퇴한 뒤 전원생활을 원했지만 아내의 65%는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부부가 함께 하루 6~10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설문에 답은 남편 56%인 반면 아내는 28%밖에 안 됐다. 평생 남편과 자식 수발하며 살았는데 늙어서도 시골에 묻혀 남편 밥이나 차려주고 살기가 끔찍할 것으로 이해가 간다.
문제는 젊은 시절 한 시도 떨어지면 못 살 것처럼 붙어 다니던 관계가 어느새 같이 있는 시간을 부담스러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래도 늙어서도 6~10시간은 붙어 있고 싶어 하는데 아내의 배신이 가슴을 때린다. 그런데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남편에게 있다. 연애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혹은 전략적으로 아내와 소통이 되었는데 결혼한 이후로 본색을 드러내 아내를 무시하고 윽박지른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래전 그저 흥미 위주의 대중서적이라는 생각에 대강 훑어보았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었다. 내용도 과학적인 깊이가 있다기보다 주관적이며 직관적인 태도가 거슬렸지만, 일단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다양하고 때론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대를 보는 시선을 교정하고 관계를 개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헤어지려는 커플에게 어느 정도 도움은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간혹 유용한 충고도 있다.
“만일 당신이 금성인이라면, 앞으로 일주일 동안 상대가 청하지 않은 충고와 비판을 일체 삼갈 것을 권하고 싶다.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의 그런 태도 변화에 무척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당신의 말에 보다 성의 있게 귀 기울여 응해 주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화성인이라면, 앞으로 일주일 동안 여자가 말을 할 때 그녀의 기분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자세로 그 말에 귀 기울여 볼 것을 권한다. 그녀의 기분이 타당하지 않다거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도 꾹 참아보라. 그러면 그녀가 당신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자신도 놀랄 것이다.”
사실 남자와 여자가 선호하는 언어 체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신뢰, 인정, 감사, 찬미, 찬성, 격려를 필요로 하고, 여자는 관심, 이해, 존중, 헌신, 공감,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남자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힘이 솟구치고 마음이 움직이는데 비해, 여자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힘이 생기고 마음이 움직인다. 말하자면 이런 언어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남자는 소통에 있어서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고, 여자는 서로 공감하는 그 자체가 소통의 핵심이라고 한다. 때로 아내가 친구들과 둘러 앉아 알맹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깔깔대고 있을 때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당신은 은퇴 후가 괴로워질 것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말은 별로 없이 미소만 띠고 있을 때, 왜 그리 소통하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한다면 당신은 새 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