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 떠도는 증명되지 않은 진리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데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칠이요, 그 사람이나 조직의 능력이나 기량이 일의 성공에 기여하는 부분은 삼에 지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부분 실패자들의 푸념이나 혹은 고스톱 판에서 이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진리로서의 진지함이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서 그렇지 상당 부분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운’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노력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계기나 시혜인데,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은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읽어 보면 자신의 능력과 인품을 앞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게 결정적인 도움이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이를테면 ‘운’인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여러 번의 운을 만나고도 흘려버리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운’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비과학적인 ‘기적’으로 오는 운은 없다. 내가 현재 꼭 필요한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의 필요는 충족되고 그 만남이 바로 ‘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운은 하늘이 내려주는 운명론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내게 필요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 행운도 또한 운수소관이니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인류는 예로부터 끊임없이 운을 개척하며 살아왔다. 통신은 느리고 교통은 두 발이 전부인 시절에도 장사라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했으며, 거간을 통해 금융과 부동산의 거래를 시도했다. 자유연애가 불가능한 세상에는 중매라는 만남의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 즉, 운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척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운’은 운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교통의 발달이 전 지구를 일일생활권으로 바꾸고, 통신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SNS 시대에 오히려 ‘운’을 틔워줄 ‘만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란한 현대 문명 속에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파편화된 개인이라고나 할까? 중매가 사라진 자유연애의 시대에 많은 젊은 남녀가 결혼 중개업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게 맺어진 커플들 중 약 30%는 다시 이혼하고 있으니 썩 좋은 운을 중개하지는 못하는 듯싶다.
오늘날 구인과 구직이 만나는 취업 시장은 이러한 만남의 부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대졸 미취업 백수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잠시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 주사나 맞고 있는 동안,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 중국과 동남아 출신 불법 체류자들에게 목을 매고 있다. 이 지독한 불운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또한, 수십 년 기업이나 해외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조기 퇴직이라는 바람에 휩쓸려 속절없이 은퇴백수 대열에 합류하고 있지만, 신생기업들은 경험자의 조언을 듣지 못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과 비효율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미스 매치(miss match)’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요즘 ‘매칭’ 산업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혼정보 업을 필두로 각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연결해주는 매칭 사업이 새로운 서비스업으로 각광받는 것이다. 세계 여행자와 각 지역의 숙박업체를 연결해주는 글로벌 매칭 사이트가 최근 폭발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러한 잠재적 필요성을 발굴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매칭 시스템이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분야는 은퇴자와 고령자 대책 부문일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젊은 은퇴자들이 대책 없이 사회의 변방으로 휩쓸려 나와 기나긴 제2의 인생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이들의 경험과 경륜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수두룩하다. 이들을 연결시키는 것이야말로 비용 들지 않는 복지가 아닐까? 연금 수령을 뒤로 늦추면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면 사회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만남이 ‘운’을 부른다면 사회적 매칭 시스템은 우리나라에 ‘대운’을 가져다주는 대박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만남’이 지역 간이나 세대 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대한민국의 운수대통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