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프레임이 판치는 세상

홍성표 2013. 4. 19. 15:12

 

 

선거는 흔히 프레임 전쟁이라고들 한다. 프레임의 사전적인 뜻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통 ‘액자’ 혹은 ‘창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런 뜻을 사회적 버전의 비유적 의미로 확대하여 해석하면 프레임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정치판에 적용하면, 상대방을 나에게 유리한 전쟁터 속으로 끌어들이는 고도의 전술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 흔히 써먹었듯이 여당은 야당을 ‘빨갱이’란 이념의 틀에 가두고 야당은 여당을 ‘차떼기’란 부패의 틀에 가두는 식이다.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프레임이 난무한다. 야당이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이란 프레임에 가두려 하고 여당은 문재인 후보를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란 프레임에 가두어 5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독재자 프레임이 잘 먹히지 않자 한때는 ‘단일화’라는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의 눈을 붙들어 매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 전쟁에서 유능한 장수는 어떤 경우이든 아군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해서 싸움해야 하는 만큼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짜는 것을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프레임이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프레임에 갇혀 왜곡된 세상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중국의 전통극인 변검처럼 현란하게 변신하는 정치적 술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프레임은 정치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니 관습이니 규범이니 나아가 집단 무의식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수많은 프레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이 과연 자유의지를 갖춘 존재인지조차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프레임은 우리가 깨고 나가야 할 악의 껍질인가? 또한, 과연 우리가 깰 수는 있는 것인가? 이 부분에 도달하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의 삶 전체가 수많은 중층적 프레임 속에서 성장하고 형성된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형성된 가치관, 행동규범, 사회질서의식 등이 모두 교육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우리 삶 속의 견고한 프레임의 위력을 인식하고 있는 한 단면일 것이다. 한 나라의 정체성도 따지고 보면 거대한 프레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프레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을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정의한다. 창이 없으면 자폐증에 빠질 테니 어찌 되었건 창을 내야 한다면 바른 곳에 창을 내야 할 것이다.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뒷골목 쪽으로 내는 것보다 밝은 빛이 들어오고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우리가 프레임을 떠나서 살 수 없다면 수동적으로 남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긍정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세상을 의미 중심의 상위 프레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미 중심의 상위 프레임’이라는 것은 ‘나’의 이유와 목표에 대한 인식이라는 말이다. 삶은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그 상황에 대한 프레임은 철저하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몫인데 이유와 목표가 명확해야 제대로 된 프레임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행위 하나하나를 마치 그것을 미래에 하게 될 일이라 생각하면서 의미 중심으로 프레임을 짜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결국 늘 나에게 의미 있는 프레임을 재설정해 가면서 스스로 행복을 ‘발견’해 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 교수는 세 가지를 우리에게 권한다. 첫째,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둘째, 높이서, 멀리서, 미리 보라. 셋째, 내가 남에게 좋은 프레임이 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냄새 나는 악성 프레임에 휘둘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의미 있는 선택을 주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프레임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명명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이름인 ‘윈도(window)’는 참으로 절묘하다. 그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비결도 그 이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되는 프레임의 예로는 중국집 코스 메뉴판에 A와 B 코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C 코스를 끼워 넣은 것에도 있다 한다. 왜 그런지는 각자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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