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필자가 대학신문사에 기자로 있을 때, 당시 대학신문으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었다. 6, 70년대는 우리 문학의 중흥기로 젊고 감각적인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산문시대’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작가들은 신선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우리 문단을 주도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현장에서 우울하고, 음산하고, 고뇌에 찬 삶을 그려냈던 ‘전후문학’이 서서히 퇴조하고 새로운 젊음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에 톡톡 튀는 개성으로 주목받던 김승옥, 황석영, 조해일, 박태순 등, 변화를 주도하던 작가들과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그때 전체를 관통한 주제가 ‘의미인가 재미인가’였다. 왜냐하면 50년대의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하던 전후문학에 비해 이들의 작품은 가벼운 주제로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문단의 주류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고, 그런 점에서 ‘의미인가 재미인가’라는 인터뷰의 제목은 생각보다는 민감하고 논쟁적이었다.
물론 재미를 추구하는 이러한 흐름에 모두가 열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문학이라면 예술의 한 장르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끄는 지사적 풍모이거나 우매한 백성을 계도하는 계몽의 수단으로 인식하던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재미를 추구하는 문학은 상업성을 앞세운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나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은 이러한 논쟁에 기름을 부으며 영화화되기도 했다. 젊은 층의 호응은 이끌어 냈지만, 대다수는 이런 흐름을 문학의 타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 시대는 ‘의미’의 시대였다.
‘의미의 시대’라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뜻이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고, 개인의 행복보다는 나라의 발전이 중시되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권위주의에 순응한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민주화운동’도 깊이 생각해 보면 역시 ‘의미’에서 탄생한 사회현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 둘은 쌍둥이와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일방적인 재미를 못 견뎌 하고 그 속에서도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 한다. 어찌 보면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왔으므로 의미 없는 말장난에는 생리적으로 거북함을 느낀다.
그러나 시대는 어느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의 졸업식 축사에서도, 결혼식 주례의 주례사에서도, 관공서의 시무식에서도 딱딱한 훈시를 늘어놓으면 쉽게 ‘꼰대’ 소리를 듣는다. 어느 모임에서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우스개 한두 마디 모르면 쉽게 왕따로 전락한다. 내가 아는 친구는 수첩에 깨알같이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유머를 적어 가지고 다닌다. 사실 써먹는 순간에는 별로 우습지도 않지만.
이제 ‘의미’를 강조하면 한물간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소용없는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가벼워져도 역사는 의미 있는 존재들에 의해 움직여 갈 테니까. 다만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없이 ‘시대와 불화’하고만 있다면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세대 간 소통의 문제가 불거진 이유도 이런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온갖 재미로 가득 찬 세상에 물들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일 것이다. 다만 소통의 방법을 찾지 못할 뿐이다.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역시 기성세대의 몫이다. 뒷머리가 근질거리겠지만 아들, 딸, 손주들과 함께 앉아 개그콘서트도 보며, 같이 킥킥거리며 ‘재미’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실버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0) | 2013.05.22 |
---|---|
국가의 위기에서 종(種)의 위기로 (0) | 2013.04.23 |
우리가 소통할 수 있을까? (0) | 2013.04.19 |
죽어서도 사는 방법 (0) | 2013.04.19 |
나이 먹음과 글쓰기 (0) | 201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