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시니어들에게 <글쓰기>는 필수이다

홍성표 2013. 6. 26. 14:51

 

 

최근 들어 노년층 사이에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와는 달리 고등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비록 글쓰기와는 무관한 분야에서 평생 일해 왔지만, 자신의 삶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는 방증이다. 작년에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형오 씨가 460쪽이 넘는 정통 역사서인 <술탄과 황제>를 펴내 눈길을 끌었지만, 요즘은 평범한 이들의 자비 출판도 부쩍 늘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75세의 구로다 나쓰코(黑田夏子) 여사가 연초에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미 지난해에도 74세의 후지사키 가즈오(藤崎和男) 씨가 군조(群像) 신인문학상 우수상을 받아 노년의 글쓰기는 새로운 풍조가 된 듯하다. 두 사람 모두 주부로서, 혹은 영어 학원 강사로서 살아오다가 70세가 넘어서야 글쓰기에 도전했다는 점이 공통된다. 그러니까 나이와 글쓰기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글쓰기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노후 생활에 지장이 없는 분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 정도로 경원시하거나 글재주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글쓰기에는 그런 점이 없지도 않다. 그동안 적어도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산재해 있다. 개인 블로그만 개설하면 얼마든지 글을 쓰고 저장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오늘날 글쓰기는 단순히 노후의 취미 생활을 넘어서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페이스북이나 SNS 등을 통해 혹은 카카오톡 같은 문자를 통해 온 국민이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소리로 표현되는 대화에서 문자로 표현되는 글로 소통의 수단이 바뀌어 간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말이 문자로 바뀐다는 의미를 넘어 생각이 소리로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자로 영원히 남게 되며,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남기게 된다는 뜻이다. 글은 육체의 DNA를 초월하여 세상에 나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법한 자연과학에서도 글쓰기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이해되지 못한다면 상아탑 안에 고립되고 결국은 과학의 퇴보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과학자의 상당수는 실제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저술가’라는 사실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시인으로 불렸던 문청(文靑) 출신(?)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도 그가 쓴 논문이 과학 잡지 ‘네이처’에 세 번이나 떨어졌단다.

 

최 교수는 “과학은 어려운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글 솜씨가 더 필요하다”면서 “비슷한 방향의 논문이라면 누구 글 솜씨가 더 훌륭하냐에 따라 우수 학술지 게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이 인문학을 아우르는 ‘통섭’을 주장하고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신입생은 한 학기에 적어도 세 편의 에세이를 써야 한다. 교수는 학생을 서른 명씩 맡아 일일이 글을 첨삭 지도한다. 하버드대가 사회에서 리더가 된 졸업생을 조사했더니 ‘성공의 비결은 글쓰기’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한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박지원이나 정약용을 아는 것은 그들이 남긴 글들 덕분이다. 아마 우리가 후세에도 알려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남긴 글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흔히 재주 없음을 한탄하지만, 글 솜씨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다. 꾸준한 연마와 적절한 기술 습득을 통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다.

 

박지원의 글은 당시 문체에 비하면 지나치게 파격적이라 정조 임금이 금서로 지정했으며, 정약용은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지만 대부분이 수많은 서적들을 읽고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재구축한 것들이다. 지금 글 솜씨가 부족하다고 좌절하지 말자. 또 아는가? 후세에 알아줄지. 생각이 부족하면 주저 말고 여러 책을 읽고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자. 짜깁기의 대가 정약용도 성공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