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나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홍성표 2013. 8. 3. 14:40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린다. 어느 자리에 가건 ‘이야기꾼’ 주위에 사람이 몰리고 그의 재담에 귀를 기울인다. 기부단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면,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굶주리고 죽어 가는지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이론으로 설득해 봐도 그저 여배우가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흑인 아이를 안고 눈물 흘리는 사진 하나가 훨씬 많은 기부금을 모은다고 한다. 역시 이야기의 힘이다.

 

논리는 머리를 움직이지만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머리는 설득하지만 마음은 감복한다. 그래서 이야기로 지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인류의 고대 역사는 모두 신화로 되어 있다. 그래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복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교에 교리만 있고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신도들이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대에는 법전마저도 이야기로 되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이처럼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삶이 구체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야기의 힘은 압권이다. 매일 수많은 여성을 TV 앞에 붙들어 둘 수 있는 것도 드라마 속 이야기의 힘이고, 9시 뉴스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누가 사주지 않지만 잘 만든 드라마나 영화는 외국에 팔려 나간다.

 

요즘은 스토리 마케팅이라고 하여 작은 구멍가게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이야기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도 역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착한가게’니 ‘공정무역’이니 하는 새로운 용어들도 모두 스토리 마케팅의 범주에 속한다. 일단 풍문을 타기 시작하면 상품의 가치를 넘어서는 아우라가 덧씌워진다. 고객들은 기다리거나 줄을 서는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숭배자들로 변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선수였다. 그의 신제품 홍보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은 일종의 쇼처럼 연출되고, 상품의 질보다는 판타지를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그러니 제품이 중국 어디에서 저임금 근로자들의 고된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따위는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수많은 애플 마니아가 양산되었으며 매장마다 밤새워 줄을 서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애플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

 

애플이 정교하게 연출된 신화라고 한다면, 노드스트롬(Nordstrom) 백화점의 이야기는 자연 발생적이다. 그 백화점의 제 1 수칙은 ‘무조건 환불’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 백화점에서는 팔지도 않는 타이어를 어떤 고객이 가지고 와서 환불을 요청했다. 물론 무조건 환불해 주었다. 이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고 백화점의 신뢰도와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보다도 지자체들이 더 깨어(?) 있는지 너도나도 스토리마케팅에 집착한다. 한 때 홍길동이 서로 자기 지자체의 이야기라고 우기며 재판까지 간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었다. 기업들도 서서히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쪽으로 홍보 방향을 돌리고 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해졌다. 요즘 몇 개 기업이 나쁜 이야기 한 방에 ‘훅’ 가는 장면을 보며 몸조심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작은 식당 하나라도 이야기를 통해 승부할 수 있다. 과거에도 음식이 진짜 맛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욕쟁이 할머니’ 같은 이야기로 유명했던 경우가 있었다. 어떤 식당은 그걸 따라 하다가 손님들로부터 욕만 먹었다는 웃기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음식의 맛이든 정성을 다 하는 서비스든 자신의 장점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진정성이 있는 이야기는 향내처럼 퍼지기 마련이니까.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은퇴자들에게도 이야기는 중요하다. 남은 삶이 어떤 이야기로 남겨지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내가 남기는 이야기는 혈육에게 남기는 생물학적 DNA 못지않게 중요한,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사회적 DNA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