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기억력 감퇴가 아니라는데요?

홍성표 2013. 8. 22. 16:59

 

 

요즘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문명적 담론 가운데 하나가 스마트폰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다.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는다. 따라서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날로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발달로 인한 생물학적 퇴보의 증거가 아닌가 하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사실 필자도 가족들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 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 휴대폰의 분실이라는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기억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인지가 조금 애매한데, 이런 상황을 생물학적 퇴보로 규정하고 나아가서 죽어가는 기억력을 살리지 않으면 뇌 건강에 문제가 생길 듯이 떠드는 보도에 조금 주눅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논쟁은 매우 진부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이던 60년대에도 사칙연산만 가능한 소형 계산기가 상용화되었는데 당시에도 교육계에서는 학생들이 산수를 배울 필요가 없어 암산 능력이나 수학 지식이 퇴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의 뇌가 그때보다 퇴보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문명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런 궁금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것은 ‘21세기 에디슨’으로 칭송받는 레이 커즈와일 씨 덕분이다. IQ가 165이며 이미 30년 전에 예언했던 147개의 예측 중 126개가 실현될 정도로 뛰어난 미래학자인 커즈와일 씨가 방한해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고 갔다.

 

그는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는 것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본디 뛰어난 두뇌로 끊임없이 도구를 만들면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데 만약 그것이 인간을 퇴보하게 한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 때문에 편견이 생겼을 뿐이지, 결국 인간이 만든 기술은 인류 문명의 연장선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명쾌한 답이다.

 

사실 기계에 대한 이런 종류의 오해는 우리가 오랫동안 ‘인간의 몸’ 중심으로 사고하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도구는 손의 연장이며 수레나 자동차는 발의 연장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24시간 곁에서 떼어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은 몸에 이식되지 않았을 뿐이지 깊이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뇌의 연장(brain extender)이라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언젠가 우리 몸을 서버에 연결해 뇌의 기억을 분산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 뇌와 연결해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마치 USB를 사용하듯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업로드도 할 수 있게 되며, 그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생물학적 사고관의 한계를 넘어 점점 기계적 사고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문명발전의 현실에 두려움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뇌의 특성에 관해서도 그는 독특한 견해를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뇌의 무한한 가능성의 10%도 쓰지 못하고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생각은 뇌의 80%를 차지하는 신피질(neocortex)에서 이루어지는데 신피질은 패턴을 읽고 기억하는 약 3억 개의 모듈로 구성되었으며,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는 기억이 각각의 모듈에 저장되고 그 총합이 곧 지능이란다.

 

그런데 20세쯤 되면 신피질의 3억 개 모듈을 모두 사용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기존의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야 한단다. 그러니 새로운 창의적 사고를 하려면 기억된 자료를 지우는 아픔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피질을 인위적으로 늘일 수는 없으니 두뇌의 밖에다 인조 신피질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이 시대에 꾸준히 만들어지는 스마트폰 같은 보조 두뇌들이 바로 그것이란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으로 벌써 머리가 뻐근해지는데 어쨌든 기억력의 감퇴가 아니라는 말만은 반갑다. 시니어들일수록 기억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는데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기억을 더 많이 지워야 한다니 어디 가서 기억력 없다고 핀잔 받을 일은 많이 줄어들 듯하다. 그는 마지막 팁으로 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권했다. 인생의 후반은 선택과 집중으로 현명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