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겨울 연가>의 일본 진출 10주년을 맞아 ‘욘사마’를 비롯한 한류 연예인들이 일본을 방문하자 공항이 마비되고 공연장에는 수만 명의 팬들이 몰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비슷한 시간에 일본 자민당 의원 백 육십여 명은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로 몰려가 참배했다.
한일 관계는 관계정상화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냉랭하고 연일 망언과 독설이 오가는데도 일본의 수많은 아줌마와 젊은 여성들은 여전히 욘사마와 한류에 사랑을 보내주고 있는 셈이다. 관계 악화의 정점에 서 있는 아베 총리의 부인조차 한국 사랑을 표현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 내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싸움과 갈등에 온 나라가 피곤에 절어 있다. 이제는 정치권을 넘어 사회 곳곳마다 갈등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교육이나 노동 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일사불란 하던 검찰마저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
요즘의 사회 현상을 보면 사사건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명백하게 국가에 도움이 되는 시급한 일인데도 일단 시비를 걸고 본다. 부동산 침체로 서민들의 고통이 극에 달해 있어도 관계 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만들 때는 동의했지만, 통과시킬 때는 마음이 변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어처구니없는 형국이다.
집에 있는 아내들은 장바구니 물가와 육아 문제, 전세 대란 등으로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남자들은 바깥에만 나가면 싸움에 휩쓸린다. 당장 민생 문제가 발등의 불인 줄은 알면서도 한 번 불이 붙으면 죽기 살기로 편을 갈라 싸운다. 이제는 같은 편끼리도 싸운다. 바야흐로 ‘무한도전’의 세상이다.
TV 프로인 ‘동물의 세계’를 보면 포유류 동물들이 발정기만 되면 수컷들끼리 무한 경쟁을 한다.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무리 안에 있는 암컷을 모두 차지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는 권리가 상으로 주어진다. 오늘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바라보자면 바로 이 발정기의 수컷들이 연상될 정도이다.
그러니까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영(陣營)이라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싸움을 위한 싸움’에 몰두하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래도 암컷들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강자를 기다려주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최고의 싸움꾼을 존경하기는커녕 경멸하며 매장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도 싸운다.
문명사적으로 김지하 시인이 갈파한바 “바야흐로 여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늘날의 이런 세기말적 갈등은 어쩌면 여성의 시대의 개벽을 알리는 마지막 진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컷들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수컷들이 만들어 내는 문명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여성 대통령의 당선으로 기대를 걸었지만, 지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시대가 변하기는 어렵다. 이제 남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그녀들이 시대의 전면으로 나서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사회를 분열과 패망으로부터 지키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다.
남성이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여성화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여성화한 남성 시니어들이여! 침묵만 하지 말고 발언을 하자. 이 사회가 더는 깨지지 않도록 부드럽고 원만한 여성스러운 리더십을 발휘해 보자! 아니면 요즘 20대 이하의 청년들이 옛날보다 여성화되고 있다니 그들에게나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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