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든 2014년이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 국회가 무슨 카운트다운 하듯 예산안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새해로 넘어오고 말았다. 미디어들마다 새해는 청마의 해이니 운세가 어떻고 하며 점괘 같은 얘기들을 한바탕 늘어놓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새해에 대한 의미부여가 부질없게 느껴진다.
하기야 시간의 흐름이 우리 뜻이겠는가. 기다리면 누구에게나 오게 되어 있는 것이 새해인 것을. 가만히 있어도 생일이 돌아오듯이 말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런 기념일은 ‘해픈(happen)’에 기원을 두고 있는 ‘해피(happy)’로 축하한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오게 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모처럼 새해부터 새 마음으로 새 삶을 살아보려 하는데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단위로 삶의 매듭이 끊어지기에는 우리의 변화하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에 해 본 소리다. 과거 농경 시대에 고안된 시간의 분절(分節)이 디지털 시대에도 그 효용을 유지하겠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속도와 시간은 반비례하므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시간은 천천히 흘러야 하는데, 웬걸 세월이 흘러가는 속도에 맞추어 시간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밀레니엄이 출발한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14년이 흘렀다.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면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난다는 말이 사실 같다.
객쩍은 말이 길어졌지만, 변화의 속도가 하도 빨라 미래를 예측하기가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적 두려움을 눙치고자 한 소리였다. 농경 시대는 소득이 적고 문명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어느 정도 삶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안정된 시대였다. 천재지변만 아니라면 궁기는 들었어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2014년 즈음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의 ‘고령화 사회’가 풀기 쉽지 않은 난제인 것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 외에도 ‘미래 예측이 쉽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부의 준비도 부족하고 개인의 대비는 더욱 한심할 정도로 안전망이 허술한데, 보이지 않는 위험은 쉬지 않고 다가온다.
찰스 다윈은 그의 <진화론>에서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한 동물이다.”라고 갈파했다. 지금 아무리 강하고 똑똑하다고 자부해도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자연 선택’이라는 생존경쟁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규범과 사회적 모델들은 점차 낡아가서 하나 둘 용도 폐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가 주도해야만 한다는 생각과 각종 이슈들, 시장 만능의 사고방식들, 자신이 소속된 이익집단에 의지하여 권리를 지키려는 태도들, 집값은 언제나 오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나 대량생산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들이다.
없는 이들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싶은 복지의 모델들도 시나브로 깨져나가는 중이다. 복지 선진국이라는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의 “20세기 복지국가는 이제 끝났다. 정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저축해 자신들의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 같은 복지국가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선언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서구 유럽은 이미 낡은 복지 제도를 버리고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그동안의 복지국가 모델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것을 인식하고 전반적으로 ‘자립’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맞추어 정책을 짜고 있다. 구직을 안 하면 실업수당을 깍는다든가,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노인연금도 점차 삭감하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이동도 새로운 불안 요소이다. 서유럽에서는 이슬람 이민자들의 이주가 급증하고 동유럽으로부터의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 우리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탈북자들의 유입이 증가하는 등 비슷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 통일이라는 돌발변수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IT의 발전은 우리의 생활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생활의 편의가 향상되고 의료의 질은 높아지겠지만, 고령자들의 기술 소외는 ‘정보격차’라는 새로운 불평등의 요소가 될 것이다. 본인의 노력과 교육 기회의 확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한 정보 유통의 새로운 커뮤니티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
다가올 변화에 대한 전망이 안개로 자욱하지만, 어쩌랴! 뚫고 나가는 수밖에. 그래도 더디게 늙는 육체와 제법 높은 교육 수준은 우리 편이다. 새해를 맞아 두서없이 내린 결론은 ‘도전’과 ‘자립’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믿음으로 안개 속을 헤쳐 나가자! 해피 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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