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생각의 말뚝에 묶인 줄을 끊자

홍성표 2013. 9. 5. 16:12

 

 

 

한때 인생 이모작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수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평균수명 60세 시절에 고안된 사회제도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삶의 모형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모작이 정착되기도 전에 인생 삼모작, 나아가서 평생 직장유목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강사들도 생겨났으니 우리 사회는 참으로 성급한 사회이기도 하다.
 
강사들의 경쟁력이 약간의 오버와 과격에 있으니 조금은 눈감아 주기로 하더라도, 한 가지 직업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은퇴자들에게는 ‘이모작’이 또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닌가 한다.
 
평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략 25년여 간 한 가지 일에 종사하다가 오십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일로 진출하려니 두렵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의 은퇴자가 자신들이 해온 일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구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경륜을 재활용한다는 면에서 그것은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많은 기업이 정년퇴직한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재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임금피크제니 정년연장이니 하는 제도들도 다 이런 발상에서 비롯한 것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또 어떡하는가. 최근에 은퇴자를 위한 재교육이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런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려니와 교육을 통해 운명을 바꾸어 보려는 은퇴자도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심리학에 ‘벼룩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어느 생물학자가 벼룩을 바닥에 놓고 마음 놓고 뛰어오르게 했더니 1미터가 넘게 뛰어올랐다. 그런 다음 50cm 높이에 덮개를 씌워놓았다. 벼룩들은 뚜껑에 부딪히며 아우성쳤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덮개를 열어주어도 그들은 영원히 50cm 이상을 뛰어오르지 못했다는 유명한 실험이다.
 
우리도 어쩌면 한 가지 일에서는 쓸 만한 경험을 얻었을는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창의력이 직장이라는 덮개에 막혀 제약된 채 살아왔는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 세대는 적성 따위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그저 먹고 살아야 하는 당위에 사로잡혀 한 평생 보낸 세대가 아니었던가!
 
사실 우리 세대는 직장을 ‘재미’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생활의지’만으로 지나온 세월이었으므로 새로운 창의적 삶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한 업보가 은퇴 이후의 방황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하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창의성이라는 영혼이 잘못된 습관에 길들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영국의 괴짜 기업가 리처드 브랜든 버진 그룹 회장은 평생 재미를 찾아다닌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한 번도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 적은 없습니다. 사업에서 재미를 발견하며 즐겁게 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왔습니다.”
 
리처드 브랜든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자는 아니었지만, 매번 새로운 도전에 미친 괴짜였기에 성공이라는 부수적인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그 전에 해온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어야 한다는 이상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창의성과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어린 코끼리를 줄에 묶어 말뚝에 매어두면, 자란 후에도 조금 당기면 쉽게 말뚝이 뽑힐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코끼리는 전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도 그 코끼리를 닮은 것은 아닌지 나를 한 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매여 있어 묶어놓은 줄을 풀기가 어렵다면,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운명적인 신탁(神託)의 매듭을 단호히 잘라버린 알렉산더처럼 용기 있게, 생각의 말뚝에 묶인 줄을 끊고 재미있는 새로운 도전에 한 번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