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홍성표 2013. 9. 13. 17:46

 

 

 새 정부 출범 이후 ‘창조 경제’라는 개념이 화두가 되어 있다. 대통령이 줄기차게 강조하다 보니 정부 각 부서가 너도나도 별의별 곳에 ‘창조’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된 듯하다. 교육도 창의성을 앞세우고 복지도 창조를 내세우니, 창조 외교, 창조 안보가 나올 날도 멀지 않은 듯싶다.

 
그런데 이런 창조의 시대에도 보이지 않게 세대 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물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니 젊은이들이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겠지만, 노인 세대가 지나치게 소외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창조나 혁신이라는 것은 지식보다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시니어가 지혜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발명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넘치는 끝에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발을 한 걸음 내디디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에디슨도 99%의 노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노력이란 과거로부터 쌓인 결과물과 수없는 실패의 혼합물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철도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철도의 양 궤도 사이의 표준 거리는 4.85피트이다. 많은 이들이 왜 이런 수치를 표준 거리로 정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런데 미국 초기의 철도를 건설한 것은 영국인들로 그들은 자기 나라의 철도 기준을 따랐을 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묻는다. 영국은 애 하필 4.85피트를 표준 거리로 삼았을까 하고. 원래 영국의 철로는 전차를 건설한 사람이 설계한 것으로, 4.85피트는 전차에 사용되던 표준이었다. 그렇다면 전차의 표준은 또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들은 마차를 만들던 사람들이었으니 마차의 두 바퀴 사이의 거리를 표준으로 한 것이다.
 
마차는 또 왜 이 거리를 표준으로 했을까? 이는 당시 영국의 오래된 길마다 이미 마차의 바퀴자국이 깊게 파여 있어서 그 궤적대로 마차를 몰지 않거나 이 기준과 다른 너비의 바퀴를 사용하면 얼마 못 가 마차 바퀴가 부서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의 수레바퀴 자국 넓이가 모두 4.85피트로 통일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수레바퀴 자국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 답은 고대 로마인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4.85피트는 바로 고대 로마의 전차 바퀴 넓이였던 것이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오래된 도로는 대부분 로마의 군대가 건설한 것이기 때문에 이 표준이 계승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의 전차는 왜 4.85피트를 표준으로 정했을까? 여러분도 한 번 맞춰보시라.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전차를 끄는 두 마리 말 엉덩이의 너비가 대체로 4.85피트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로 궤도 표준의 역사는 무려 2,500여 년의 기나긴 연관성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동력의 수단은 시대마다 창조와 혁신을 통해 개선해 왔지만, 그 근본 표준은 역사성의 꼬리를 떼어내지 못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의 삶도 크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역사는 순환하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30년 전 만해도 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하면서 인문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인문학을 모르면 기업들이 생존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다.
 
창조 경제는 기상천외한 것을 발명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룬 실적들을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분야를 찾거나, 기존의 것들도 혁신과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은퇴한 시니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젊은이의 힘과 시니어의 지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