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실버산업에 대한 전망의 허와 실

홍성표 2013. 9. 3. 09:31

 

 

 고령화 사회의 도래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래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점진적인 은퇴와 맞물리면서 고령세대의 증가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질적인 변화를 불러오리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복지와 재정의 불균형이라든가 대책 없는 연금 문제를 비롯하여 의료비의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 시스템의 붕괴 등 하나 같이 어려운 과제가 대부분이다. 재정적 측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노년층의 증가로 인해 사회의 활력이 저하된다는 점에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는 법인데, 비교적 고도 성장기의 혜택을 많이 받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새롭게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이 발전하면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중의 하나이다. 물론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므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건강하고 여유 있는 노년 계층이 두터워진다면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장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버 쪽에서 기회를 타진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그룹은 구매력이 있는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본다. 예컨대 시간의 여유가 많아짐에 따라 여행이나 레저 등에 대한 욕구가 커지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은퇴 후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터무니없는 예측은 아니다. 웰빙과 관련된 부분이라든가 반려동물 사업 등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또한, 노후에 가족이 줄면서 노인들의 편의를 반영한 새로운 개념의 소형주택에 대한 수요도 있을 것이며, 건강식품을 비롯한 의약품에 대한 수요도 생각해 볼만하다. 뭐니 뭐니 해도 노년의 불안감을 대변하는 보험 사업과 장례 사업이 특히 수혜를 입는 사업이 될 전망이다. 부유한 노년층이 특별한 장례를 희망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어떤 이는 장례 사업을 ‘슬픈 블루오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실버산업이라는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시장으로 특별히 새로운 카테고리로 분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업종들은 이미 전통적인 사업들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으며 문제는 새로운 구매력이 유입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겪은 일본의 예를 보면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구매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노년층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의 가계 총 금융자산이 약 1,500조 엔인데 그중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약 900조 엔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부유한 노인들의 천국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소비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데 있다.
 
2007~2009년에 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대량으로 정년퇴직하여 실버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총무성의 가계조사를 보면 단카이 세대 퇴직 후 60대의 세대 당 소비지출은 단카이 세대 퇴직 이전보다 오히려 6%가량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은퇴 이후 고령자들의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임이 입증된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 60세를 막 넘긴 남성의 취업률은 80%를 육박한다고 한다. 절대 다수의 단카이 세대가 아직 현역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부모와 자식에게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낀 세대’이며,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이미 일부 실버산업을 기대했던 기업들이 발을 빼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아니 오히려 일본보다 자산 축적에서 현저히 열세인 우리 노년층의 형편에서 우리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더구나 가진 재산이라곤 집 하나뿐인데 집값마저 날개 없이 추락하는 현실은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실버산업은커녕 노구를 이끌고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실버산업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며 언젠가는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등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은퇴자들의 삶이 안정되어야 하며, 그들의 구매력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오히려 우리의 실버산업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은퇴자들은 여전히 은퇴할 수 없는 현역으로 살아갈 안타까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