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문화적 배경을 알면 해법이 보인다

홍성표 2013. 9. 27. 15:18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우후죽순처럼 각종의 전망과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무조건 ‘빠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나라라서인지 고령화의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아마 그 대책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하지만 그 해법이 정치나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닌 문화와 관련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흔히 우리는 사회적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본을 쳐다보았다. 사실 60년대 경제개발 시절부터 일본을 모델로 하였고 기업들도 일본을 벤치마킹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 일본이 우리와 사회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고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이니 롤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다.
 
대략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십에서 이십 년 정도 앞서 가고 있다고 볼 때, 때로는 좋은 점을 본받고 위험은 미리 경계할 수 있도록 알려주니 고마운 이웃일 수도 있겠다. 고령화 사회도 우리보다 앞서서 겪고 있으며 그에 따른 어려움도 미리 경험하고 있으니 그들을 참고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요즘 관찰해 보면 일본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 세대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들은 대동소이하다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처하는 자세 등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문화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역동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우리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 대해 한양대 김용준 명예교수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역사를 깊이 이해한 결과 수학자이면서도 문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동양문화권이지만, 우리와 일본의 기질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그는 우리와 일본 문화의 차이를 ‘자존(自尊)’과 ‘가외(可畏)’로 요약했다. 먼저 일본문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천황제 국가로 이어오다가 중세에 쇼군이 지배하는 막부제 봉건 사회를 거쳐 다시 천황제를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철저한 신분 질서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봉건제도라는 것은 엄격한 신분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다. 평민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신분 상승을 꾀했다가는 여지없이 사무라이의 칼날이 날아왔다. 그러니 자신이 속한 계급을 운명으로 알고 거기에 평생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칭송하고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그것밖엔 할 수 없는 여건 때문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가외(可畏)’라는 말은 두려움을 안다는 뜻인데 다른 말로 하면 분수를 알고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의 민족적 특징 중에 ‘혼네(本音)’라고 하여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에 복종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체질화했다.
 
반면에 우리의 특징은 ‘자존(自尊)’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존심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변에 흐르는 의식 속에는 ‘평등의식’이 깔려 있다. 고려 시대만 해도 여성들이 평등하게 상속을 받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가부장적인 지배 이념을 만들어 내서 그렇지 그전에는 머슴에게도 품삯을 주었다.
 
나라가 망하면서 왕족이 사라지고 양반이 퇴출되었으며, 전쟁으로 모든 경제적 토대가 무너졌으니 우리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평등이 물리적으로 구현되었다.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존의식과 결과적 평등이 결합하니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가 구현되었다. 오늘날 작은 쟁점에도 온 나라가 용광로같이 부글부글 끓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본의 노인들이 국가에 순응하고 연금 받으며 조용히 사는 모습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은퇴자들은 무모하도록 역동적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작은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이라도 벌이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어떤 태도가 바람직한가를 떠나 이런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책이 노인연금이나 보조금보다는 일자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