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스토리

절차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

홍성표 2014. 2. 12. 10:15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는 참 어렵다. 지역마다 환경 여건이 다르고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니 정의를 한 마디로 규정하려는 것은 독단이 되기 쉽다. 더욱이 한 지역에 사는 동시대인들조차도 정의에 대한 생각이 상반된 경우가 있으니 다루기에 따라서는 분쟁의 소지가 농후한 ‘뜨거운 감자’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숱한 전쟁과 처참한 살육이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종교적 정의로 포장된 십자군 전쟁이나 중세의 마녀 사냥, 조선조에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질러진 각종 사화(士禍)들이 그렇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벌인 끔찍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합의되지 않은 정의는 총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인간은 선의(善意)에 기대하기에는 본질적으로 너무 허약하다. 결국, 정의에 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하든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법(法)이다.
 
보통 정의를 앞세우면 그 사회는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가 된다. 오늘날 얼마 남지 않은 공산주의 체제나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이 그렇다. 따라서 대부분 민주 사회에서 정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후적으로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그런 까닭으로 법은 ‘절차적 정의’가 될 수밖에 없다.
 
흔히 사람들이 다툴 때 온갖 논리와 윤리 도덕과 인정(人情)까지 동원해 보지만, 해결이 안 될 때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것이 법이다. 법은 이처럼 사회 혼란을 정화하는 종말처리장인 셈이다. 그러니까 법이 정의를 판가름해준다기보다는 정의가 가려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명문화 해둔 ‘최소한의 정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절차적 정의인 법을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결과적 정의’까지 보장해주지는 못 한다. 법이란 말과 글의 규칙을 설명하는 문법처럼 늘 사회의 변화를 뒤따라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완벽한 법을 전제로 해도 부족한데 하물며 ‘권력’이라는 불순물이 낀 법은 말할 것도 없다.
 
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떠받들지만, 그 결과로 인류의 현인인 대철학자를 죽인 결과적 정의의 모순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은 일부 이념을 앞세운 독재 추종 세력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이 절차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의 괴리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정치적 판결의 경우 재판의 결과에 따라 여야가 매번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제 코미디의 한 장르로 격상됐지만, 경제 범죄나 일반 형사범에 이르기까지 쉽사리 재판 결과에 승복하는 장면이 드물어지고 있다. 이제 거리에서 시위할 때는 아예 법을 지키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토록 실정법이 권위를 상실한 채 가볍게 취급되는 것은 큰 문제다. 그나마 최소한의 결과적 정의를 지켜주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를 이뤄낸 국민적 자부심이 과거에 만들어진 법까지 무시하는 관성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 법정에서 일어나는 미담이 화제가 되곤 한다.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며 소위 정상참작을 하는 경우이다. 어렵게 표현한다면 절차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의 괴리를 토로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미담으로 포장되었으나 이런 미담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실정법은 약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절차적 정의인 법이 충실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나,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은 그러한 법이 결과적 정의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롤스가 말한 것처럼 사회 지도층이 자신들이 잘라놓은 케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집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대부분 큰 조각을 자신들이 먼저 집어가도록 법제화한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의 정의지수(正義指數)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의 공정한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기초연금의 삭감을 묵묵히 받아들이지만, 공무원연금은 세금 지원이라는 파이를 놓지 않는다. 강우석의 <공공의 적>에 나오는 “사람이 밉지 죄가 왜 밉냐?” 하던 대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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