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자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공자는 제자들과 한 무리를 이루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치국 이념을 설파하여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엿보던 유세객의 하나였다. 요즘으로 치면 여러 번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정부에 자리나 하나 나지 않을까 기다리는 중고 정치인이라고나 할까?
일설에 의하면 공자의 무리는 노(魯)나라를 중심으로 한 교육가 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이념은 ‘예(禮)’인데 오늘의 개념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정치나 행정의 규범쯤 되겠다. 그들은 ‘예치(禮治)’를 중심으로 한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고, 노나라 실력자인 계강자(季康子)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역사 무대에 데뷔하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공자의 사상이 주로 권력이나 정치 지배자의 논리에 치우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자가 말한 ‘소인(小人)’도 피지배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인물 중 공자의 이상에 미치지 못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일반 서민에게 공자의 사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백성에 대해 논한 것이 제자인 염구와의 대화 속에 등장한다. 염구가 정치의 목적을 묻자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다음에는 무얼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공자는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정곡을 찔렀으나 역시 관념 속에만 있는 당위론일 뿐 실천적인 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공자는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에서 보듯이 가혹한 세금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세금을 매기는 지배자들의 옳지 못한 정치행태를 비판한 것이지 백성들의 ‘돈벌이’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의 뒤를 이어 훗날 아성(亞聖)으로 추앙되는 맹자에 이르면 사뭇 이야기가 달라진다. 맹자도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므로 큰 틀에서는 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지만, 공자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체계화함은 물론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진일보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드러내 보인다.
맹자는 공자와 달리 백성을 사(士)와 민(民)으로 나누어 바라본다. 그 중 사(士) 계층은 물질적 보상 없이도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 반면 민(民)은 물질적 보상 없이는 도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계층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정치란 바로 이 민(民)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민생(民生) 정치다.
맹자의 고향 근처에 있는 등(藤)나라의 문공(文公)이 치국의 방책을 묻자 그 유명한 정전제(井田制)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치 않는 재산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이 있는 법입니다.” (有恒産, 有恒心) 이를 뒤집어 말하면 재물이 없으면 나라를 향한 충성심도 없다는 말이다. 왕조 시대에는 위험한 발언일 수 있다.
이는 아무리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부르짖어도 백성들의 의식주(衣食住)가 풍족하지 못 하면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이 무용지물이라는 선언이다. 여기서 맹자 사상의 진면목을 본다. 맹자도 지배자가 의(義)를 무시하고 이(利)만 좇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으나, 근본은 백성을 중시하는 위민정신(爲民精神)에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맹자가 어렸을 때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늘 보던 대로 곡(哭)을 하며 놀자 어머니가 놀라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사람들이 하는 대로 장사꾼 흉내를 내며 놀자 다시 서당 근처로 옮기니 비로소 글 읽는 흉내를 내더라는 이야기다.
흔히들 이 이야기를 자녀 교육을 하는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일화를 다른 측면으로 보면 맹자 사상의 특징을 암시하는 비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생에서 죽음이라는 철학적 성찰이 우선이며, 그다음은 경제관념을 배우는 것이며 예법을 배우는 교육은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산업화하고 민주화되면서 경제 중심의 사회로 변모했다. 민(民)이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니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는 유교적 잔재가 남아서 그런지 여전히 관(官)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입으로는 민생을 부르짖으면서 여전히 갑 역할을 하려는 정치인들을 보며 맹자를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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